세계문화 유산 수원화성의 공사중 모습/사진=경기도일간기자단
(뉴스영 이현정 기자)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팔달산 성곽길에는 지난해 11월 기록적 폭설로 쓰러진 소나무가 9개월째 고사목으로 남아 있다. 한때 ‘소나무 터널’이라 불리며 시민과 관광객에게 사랑받던 명소는 지금 흉측한 잔해로 전락했다. 병충해 확산 우려와 안전사고 위험까지 제기되지만, 수원시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이곳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낡고 바랜 안내판이다. 글씨가 희미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안내판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길을 헤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장면이 매일같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성곽과 연결된 보행로와 도로 역시 갈라지고 솟아올라 걸림 사고 위험이 크다. 지반은 내려앉고 배수로는 무너져 보행자와 차량 모두 위협을 받고 있다. 기본적인 안전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병들어 있는 소나무가 방치된 모습/사진=경기도일간기자단
시민들의 분노는 예산 사용 방식에 쏠린다. 수원시는 해마다 각종 축제와 문화행사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정작 세계문화유산 관리에는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보여주기 행정에는 열심이면서, 도시의 얼굴이자 자산인 세계유산 보존에는 뒷전인 태도다. 한 시민은 “예산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세계유산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수원시의 책무”라고 꼬집었다.
세계유산은 건축물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환경과 경관, 안내 체계와 안전 인프라까지 종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지금 수원화성의 모습은 이런 국제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정조의 개혁 정신을 담은 걸작이자 세계인이 찾는 문화유산이 흉물처럼 방치된 현실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수원시는 행사성 예산을 줄이고, 팔달산과 성곽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세계유산의 품격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얼마나 기본을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